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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학3
소리 | 2007/12/19 08:35

어제 오후에 미적분학3 기말고사를 보았다. 수학 시험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정신적 노동도 없다. 학생들은 책상에 문제지와 마주 앉아서, 세 시간 동안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 세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종이 울리고 아쉬운 답안지를 내고 나면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머리로 계단을 내려간다. 미적분학3쯤 듣는 삼학년들은 이제 이런 식의 수학시험을 열두번 정도 치러 보아서, 굳이 시험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토론하지도 않는다. 피곤함과 아쉬움과 드디어 끝났다는 뿌듯함을 방해하지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학기 청강이다. 왜 청강하는지는 지금까지 백 번쯤 대답했다. 대회 때문에 지난학기가 반으로 끊겨서 중간고사 이후 내용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점을 잘 받았으니까 다시 같은 과목을 듣지는 않을 텐데, 이 내용도 모르고 물리를 전공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 어제 시험은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교수님은 한 학기 전에 학점을 주면서 청강하라고 "명령"하셨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까 진짜 왔냐고 하셨었다. 기말고사 성적 안 좋으면 지난학기 점수를 깎겠다는 위협은 청강하는 내내 심심할 때마다 하셨지만 애초부터 농담이었다. 그래도 시험을 본 건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시험을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교수님이 그 답안지를 한번은 쳐다보실 테니까 공부할 표면적인 이유가 좀 더 생긴다. 어떻게든 익혀야 했고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았다. 이건 졸업시수를 채우기 위해,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하는 과목하고는 좀 달랐다. 교과서를 펴면 작년 봄 일반물리학1에서부터 뜻도 모르고 쓰던 수학이 있었다. 그때 칠판에 적혀 있던 수식들은 명쾌하게 흘러갔지만, 나는 열심히 받아적으면서도 왜 이 식이 다음 식으로 넘어가는 것인지 몰랐다. 외워 두었다가 필요할 때 결과만 쓸 뿐이었다. 드디어 그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학기 청강을 마치고 나니 기분이 좋다. 물론 정상적인 수강 과목보다는 책임감이 덜해서 피곤하다 싶으면 몇 번 빠지기도 했지만, 청강 자체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까지 무난히 치고 왔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나는 학점 따려고 매달린 게 아니라, 정말 공부하고 싶어서 했다-는 이 자부심을 이해하는가?
아무도 나를 압박하지 않았던 중학교 때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이라도 공부했었다. 그때는 하루종일 수학을 했다. 주로 올림피아드 문제에 매달렸는데,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 놓고 매일 생각하다가 일 주일에 한 개쯤 풀어내는 것이 낙이었다. 대회에서 성적을 잘 받으려면 일단 해설을 보는 게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문제 보고 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끝내려면 뭐하러 수학을 하나 싶었다. 문제를 풀다가 아는 게 부족하다 싶으면 필요한 만큼 자료를 구해서 보았고, 그러면 신기할 정도로 잘 배워졌다. 좁고 작은 규모의 공부였지만 무엇보다 의미있었다. 그건 온전한 자기만족의 세계였고, 거기엔 앎과 성취에 대한 희열이 있었다.
결국 그래서 과학자가 되기로 했던 거였다. 이 학교에 왔고 카이스트에 간다. 왜 다른 학교가 아니고 카이스트에 가느냐는 질문에 나는 주로, 일찍 졸업해서 대학원에 가려고요- 하고 대답한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과정을 위한 과정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대학원에 갈 무렵이 되어 다시 왜?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중에야 세상에 나가 다른 일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젊고 똑똑할 동안에는 연구를 하겠다. 즐거울 수 있는데,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책상 앞에 붙여놓았던 문제를 떼어낼 때의 기쁨을 기억하는 동안은 그것만으로 신날 것이다. 물리토너먼트가 즐거웠던 것은 "나의 연구"가 있었고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좀더 좋은 결과, 좀더 명쾌한 설명, 그야말로 더 훌륭한 연구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실험이 성공하면 순수하게 그것만을 위해 기뻐했었다. 알아가는 것, 배우는 것에 있어서만은 계산하지 않겠다. 문제 하나에 몇 주를 끙끙대던 그때의 나를 잊어버리지 않겠다. 실험실에서 밤을 새워 고민하던 그때의 마음으로, 미적분학3 기말고사를 공부하던 어제의 마음으로 과학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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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R yolic 2007/12/20 07:43 x
제목 : 학문의 즐거움
병원에 있을 때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그러셨다."공부 잘하는 놈은 평생 공부 하게 되 있고 우리같은 사람들은 뭐 나름대로 사는거지.내가 공부가 싫었다면 이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까...
종욱 2007/12/19 11:41 R X
'ㅡ' 우리땐 7시간이었는데;ㅋㅋㅋ
나도 정말로 공부하고 싶어서 한 공부는 미적3이 마지막이었던거같애 ㅠ.ㅠ
대학와서는 진도도 못따라간 채로 시험치고;ㅂ;
오성진 2007/12/22 19:16 R X
맞아, 그런 지적인 쾌감은 지금같이 젊을 때 가장 큰 것 같아-
그 재미에 빠져서 내가 수학과로 전향했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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